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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서울대병원에서 인대파열 수술한 이야기 (3) - 드디어 다가온 수술 날, 고통의 시작

by YUZI. 2020. 6. 3.

서울대병원에서 인대 파열 수술한 이야기 (3) - 드디어 다가온 수술 날, 고통의 시작

서울대병원에서 인대파열 수술한 이야기 (1) - 사건의 발단과 코로나 19 검사

서울대병원에서 인대파열 수술한 이야기 (2) - 입원과 수술준비

 

드디어 다가온 대망의 생애 첫 수술날.

나는 첫 타임인 08시 수술이었다.

아침 수술의 이점이라면 공복을 취침시간 때 유지하고
일어나서 바로 수술할 수 있다는 거, 다음날 두려움에
떨 시간이 적다는 거, 수술방에서 대기하는 동안
현실을 자각해 아침의 몽롱한 기분을
바로 떨쳐버릴 수 있는 거(?) 정도 있겠다.

 

이 날은 긴장해서 그런지 부대 기상시간에 눈을 떴다.
평소에 자다가 깨면 물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금식 때는
물도 못마니시까 아침에 목이 여간 타는 게 아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양치하고 볼 일 보니
어느새 07시 10분, 수술장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구경만 했던 환자 카트였는데 이렇게 타본다.
앞으로는 탈 일 없어야되는 환자카트

 

그렇게 이송원 님과 함께 수술장으로 출발!

병원 내 종종 보이는 자주색에 남색 유니폼, 서울대병원의 이송원님들이다

 

준비하는데도 많이 긴장됐는데 내 발이 아닌
바퀴로 굴러가니 위축되기 시작한다.

 

수액이 참 크쥬?

 

내가 지내는 4층 병동에서 수술장이 있는 2층으로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우선적으로 탔다.

 

병원에서 지내며 아무리 공간 넓고 여유 있는 환자용
엘리베이터라도 카트나 휠체어에 양보할 상황이 많아
보통 오랫동안 기다리는데 이제는 내가 카트에
올라타 있으니 모든 게 프리패스다. 야호!

는 아니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짚으며
지난날을 반성하느라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술부...그 안에 수많은 수술장들...

 

수술 잘 받고 깨어나면 앞으로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는 동안 어느새 수술부에 도착했다.

 

의학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보호자는 여기까지,
환자는 그 안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부모님과 입구 앞에서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눈을 질끈 감고 수술부로 들어갔다.

 

바로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회복실 옆에서
대기하며 내 이름과 오늘 수술할 부위를 다시 확인한다.
곧 수술 들어갈 다른 환자들 카트도 쭉 나열돼있어
뇌하수체 수술을 받는 사람부터 나처럼 발목 수술을 받는
사람까지 나와 같은 타임에 어떤 수술이 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밖에서 열심히 마음 다잡고 들어갔더니 천장만 바라보고
마냥 대기하는 시간만 길어져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불안해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진정하는 거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한 숨 푹 자고 나오자고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5분 더 기다렸을까
내 이름이 불리고 지정된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수술방엔 서늘한 공기 속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수술 준비에 분주했다.

근데 내가 의학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까
처음 들어가 보는 수술장이니 나름 어두침침한 방에 유일하게 수술부위를 비치고 있는 불빛 하나, 심박센서를 통해 들려오는 기계음 그런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렸는데
수술장에 들어가 보니 그땐 밝고 분주한 '수술 준비 중인 방'이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中

 

그렇다. 내가 상상했던 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시점이었던 것:)

수술 침대에 옮기고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가만히 기다리다가 반가운 주치의 선생님과 수술방 간호 선생님들이 들어왔고 내 상태에 대해 몇 가지 체크하고 척추마취를 준비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새우등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무릎이 가슴에 닿는다는 생각으로 말아야 하고 주사 놓는 동안 이 자세를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

 

 

자세 잡고 주사부위 찾고 소독하고 기다렸다가 주사 놨으니 생각보다 자세를 꽤 오래 유지해야 했다.

나는 마취주사 놓을 때가 가장 아팠다.
한 번 찌르는 것도 아니고 두세 번 찔렀던 거 같은데

그때마다 등에 활 맞은 것처럼 아파서 신음소리도 내고 움찔움찔했다.

 

 

시간이 지나 왼쪽 다리는 뻐근하게 저리다가 감각이 없어졌고 소변주머니? 같은걸 찼다.

얼굴에 씌워진 수면마취 마스크, 심박센서 소리, 다들 준비된 자세로 대기하고 있으니 아까 딱 내가 생각했던 수술방 분위기였다. 어느새 교수님도 들어와 선생님들과 오늘 수술에 대한 간단한 얘기를 하는 게 들렸고 가스 들어가고 있다는 마취 선생님의 얘기와 함께 그대로 잠들었다.

 

수술 중에는 세 번 정도 깼는데 아무런 느낌도 안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수술 중인 듯해서 다시 잠들었다.

 

 

서울대병원 어플에서 진행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수술은 한 시간 정도 걸렸고 마지막으로 깼을 땐 마취가스를 더 이상 넣지 않아서 그런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수술이 끝나고는 회복실에서 잠깐 있다가 영상의학과에서 X-ray 촬영하고 석고실에 가서 반깁스를 했다.

 

 

(좌) 수술방에서 임시로 묶고 나온상태 / (우) 부목을 대고 반깁스를 한 상태

 

유쾌했던 석고실 선생님 덕에 몽롱했던 정신이 이때 제대로 깼다.

 

수술 끝나고 달고있던 무통주사. 얘 도움 많이 받았다

 

그렇게 수술 마치고 1시간 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6시간 동안 금식에 베개 없이 정자세로 누워있어야 했지만 유튜브로 때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척추마취를 하고 나면 등에 미세한 구멍이 생기는데 고개를 들거나 움직이면 이 구멍으로 뇌척수액이 흘러나와 심한 두통이 올 수 있어 수술이 끝난 시점에서 6시간 동안 베개 없이 정자세로 누워있어야 한다. )

 

왼손에는 초록색 버튼이 달린 뭔가 달려있었는데 무통주사 버튼이라고 한다. 무통주사는 1시간에 1cc씩 주입되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면 이 버튼을 눌러 1cc 더 주입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주입하면 구토를 유발할 수 있으니 고통과 메스꺼움 그 사이에서 잘 조절해야 한다.

 

마취가 덜 풀리기도 했고 무통주사 덕인지 통증이 거의 없었다.

 

수술 후 3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마취는 거의 빠지고 있었지만 아직 사타구니와 발끝은 힘을 줄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이 시간쯤 소변을 꼭 봐야 한다는 것.

물론 6시간이 지나지 않아 등에 있는 구멍도 덜 아물었을 테니 누워서 소변통에 봐야 한다.

 

(좌) 소변통 / (우) 소변줄

 

하지만 나처럼 아직 사타구니에 마취가 풀리지 않았으면 자의로 소변을 볼 수 없으니 소변통은 사치다.

소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변줄뿐... 처음엔 너무 넣고 싶지 않아서 감각도 없는 방광에 아등바등 힘줘봤지만 소용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감각이 없어 소변줄이 들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소변줄 꽂는 건 남자 선생님이 와서 해주셨다.
넣는 과정은 보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방광을 누르니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감각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지금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이후 다행히 마취는 잘 풀려서 소변통은 일주일 동안 소중하게 사용했다.)

 

 

전날과는 다르게 이제는 두 발로 서거나 걸을 수 없으니 이제 고생길 시작이다.

 

왼팔에는 아직 수술바늘이 들어가 있어 옆에 있는 물 가져오는데도 꽤 힘이 든다.

이날부터는 아버지도 병원에서 주무시기로 했기 때문에 자리도 세팅했다.

 

딱 맞는 1인용, 많이 작긴 하다

 

혼자 씻기도, 갈 수도 없어 양치하러 세면대도 못 간다.

그래서 만든 임시 양치용 컵과 뱉는 용 컵

 

페트병의 쓰임세는 어디까지인가

 

윗부분은 금방 버렸지만 아랫부분은 퇴원할 때까지 썼다.


대망의 수술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긴장도 많이 하고 몸도 피곤해서 평소보다 빨리 잠들었는데 새벽 2시부터 통증이 올라오더니 너무 아파서 잘 수 없었다.

무통주사 버튼도 세네 번 눌렀는데 통증은 줄어들었어도 잠이 안 와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두 발로 사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건강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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