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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지친 내 모습과 나의 사람들을 사랑해도 될 거 같다

by YUZI. 2021. 11. 2.


언제부턴가 가을은 여름과 겨울의 친구보다는 손님으로, 점점 어색한 이방인으로 느껴진다.

따가웠던 여름 햇빛과 후덥지근했던 공기가 머물던 곳에 가을이 들어와 이곳을 대충 쓱 훑고 지나간다.
알록달록한 단풍은 산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고 구멍 송송 뚫리고 갈라져 못다한 생에 미련을 가진듯 애매한 누런 푸른색을 보여주며 간신히 바스락 소리를 내지만 이내 짓이겨져 결국 한 꼬집도 안 되는 가루가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많이 봐둘걸" 이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한 계절의 만연함에 색안경을 낀 나를 돌아보며 다시 반성한다.
다시 새록새록 나오는 잎들은 더 예쁘게 바라보고, 다른 것에 의해 흔들리고 떨어져야만 고유의 소리를 내는 그 헌신적이고 기구한 생명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나에게도 찾아온 10월의 이방인은 내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주변에 만연한 소중한 것들을 저버리고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를 해쳐가며 억지로 밀어붙였던 10월의 내 모습은, 지금 돌아보면 도전정신보다는 처량에 가까웠다고 본다.

낙엽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이제 막 난 어린잎들도 자연의 섭리에 맞게 떨어지는데 나는 왜 겁을 먹어서, 아니 어떤 용기로 매달리려 했을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과 때에 맞게 흘러가고, 세상이 나에게 속도를 요구하기도, 여유를 주기도 하는 건데 다시 강박에 빠져 처량한 독주를 펼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잘 알지 못해서 연민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보다는 연민을 연민 그것으로 끝내버리고 알지 않으려 하는 것일지도.

낙엽이 떨어지는 이유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여 나무가 살기 위함이다.
잎이 사계절 내내 나무와 함께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무의 숨통이 아닌 기생충과 다를 것 없다.
그 나무는 죽고 나무가 죽으면 당연히 잎도 없다.
혹독한 계절을 견디면서 나무는 경험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웅장하게 자랄 시기를 기다린 뒤 때가 되면 자그마한 잎을 틔운다.

결국은 떨어지는 낙엽이 나무를 살리는 법.
우리는 헌 모습으로 떨어지는 그들에게 박수쳐주고 돌아오는 계절에 다시 빼꼼 인사하는 이파리를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면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우리 나무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나에게도 찾아온 10월의 이방인은 내 마음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이방인은 내 길의 장애가 아닌 쉼터가 되어주려 온 것이었다.
헌 잎을 털고 더욱 견고하고 단단한 큰 나무가 되어 새 잎을 틔울 준비를 하라는 말을 전하러 온 이방인, 나는 낯선 그의 말을 듣지 않고서 썩어 문드러지는 잎들을 꼭 쥐고 떨어진 것들을 다시 갖다 붙이곤 했다.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왜 주변을 보지 않고 나도 모르는 앞으로만 빠르게, 더 빠르게 가려고만 했을까.

지친 내 모습도 나다. 그 모습에 박수쳐주고 떨궈내야 나라는 나무가 살 수 있다. 그리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을 잊지 말자.
혹독한 계절을 견뎌내는 나무처럼 지금 회복기에 있는 내 모습 또한 사랑하자.

https://youtu.be/z3Xx-sELx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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